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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하시중 : 고려시대 최고위 관직

by NewWinds 2025. 2. 19.

‘문하시중(門下侍中)’은 고려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관직 중 하나로, 국가의 최고 수상 역할을 수행한 자리를 의미합니다. 이 직위는 단순히 명예직을 넘어 실질적인 정치적 권한을 행사했던 중요한 직책이었으며, 국왕을 보좌하고 중요한 국정 운영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문하시중의 정의와 역할

‘문하시중’은 중서문하성의 수장으로, 국왕의 최고 보좌관이자, 실질적인 수상의 역할을 했습니다. 이 직위는 982년, 고려 성종 1년에 내사문하성이 설치되면서 처음 도입되었으며, 종1품의 품계를 가진 중요한 관직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핵심 역할

  • 국가 중대사 논의 주도: 문하시중은 국왕과 함께 국가의 중요한 정책이나 결정을 논의하며 국정을 주도했습니다.
  • 인사 행정 관리: 판이부사를 겸임하면서 문반 인사 행정을 담당하고, 백관들을 통솔했습니다.
  • 재추회의 운영: 국정의 핵심 회의인 재추회의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며 국정 운영을 이끌었습니다.

특별한 지위와 경제적 보상

문하시중은 실무적인 수상으로서 다른 종1품 관직인 중서령이나 상서령과는 달리 명예직이 아닌 실질적인 행정과 권력을 가진 직위였습니다. 이로 인해 경제적 보상 또한 매우 컸습니다. 예를 들어, 문종 대에는 전시과 제1과 전 100결, 시 50결과 함께 녹봉 400석을 받았으며, 이는 당시 최고 수준의 보상 중 하나였습니다.

문하시중의 역사적 변천

문하시중의 직위는 여러 차례 변화를 겪으며 발전해 왔습니다.

1. 1275년: 첨의중찬으로 개편

문하시중 직위는 1275년, 첨의중찬으로 개편되었고, 좌우 각 1인의 정원으로 확대되었습니다.

2. 1354년: 도첨의시중으로 변경

이후 1354년에는 도첨의시중으로 변경되었으며, 1356년에는 반원개혁으로 문하시중 직위가 다시 복구되었습니다.

3. 1369년: 문하좌시중과 문하우시중으로 분리

1369년에는 문하좌시중문하우시중으로 분리되어, 더 세분화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4. 조선시대 변화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는 좌우시중이라는 이름으로 구분되었으며, 1394년에는 정승이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결론

‘문하시중’은 고려시대의 실질적인 수상직으로, 국왕을 보좌하고 국정의 중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 직위는 단순한 명예직이 아니라 정치적 권한책임을 지닌 중요한 직책으로, 고려의 정치 구조와 국정 운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