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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용 선장 : 베트남 보트피플 96명을 구조한 대한민국 해기사

by NewWinds 2026. 2. 23.

전제용 선장은 1985년 남중국해에서 표류하던 베트남 보트피플 96명을 회사의 반대와 개인적 희생을 무릅쓰고 구조하여 인류애의 참된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린 현대판 의인이자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참된 해기사입니다.

전제용 선장 : 1985년 남중국해에서 베트남 보트피플 96명을 구조하여 인류애를 실천한 대한민국 참된 해기사의 표상

인류애의 위대한 결단, 전제용 선장은 누구인가?

전제용 선장은 대한민국 해운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그는 1985년 당시 현대양행(현 현대상선) 소속의 참치 잡이 원양어선 '광명 87호'의 선장이었습니다. 평범한 선장이어가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된 이유는, 본사의 지시를 거부하면서까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기로 결정한 '용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은 단순히 한 명의 선원을 넘어, 인간의 생명이 그 어떤 경제적 가치나 규정보다 우선한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해 보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전제용 선장의 구조 사건부터 그 이후의 삶, 그리고 그가 남긴 정신적 유산에 대해 상세히 다루어 보겠습니다.

운명의 날과 구조 결정

당시 전제용 선장이 이끄는 광명 87호는 인도양에서 조업을 마치고 부산항으로 귀국하던 중이었습니다. 남중국해 해상을 지나던 그때, 전 선장의 눈에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작은 나무배 한 척이 들어왔습니다.

보트피플과의 조우

그 배에는 굶주림과 갈증에 지쳐 죽어가는 베트남 피난민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베트남 전쟁 종전 이후 공산 체제를 피해 탈출한 이른바 '보트피플'이었습니다. 당시 국제 사회는 이들에 대한 지원에 소홀한 상태였고, 많은 상선들이 일정 지연과 비용 발생을 우려해 이들을 외면하던 시기였습니다.

본사의 무시무시한 지시와 갈등

전 선장은 즉시 본사에 구조 허가를 요청하는 전문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본사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냉혹했습니다. "국제적인 분쟁에 휘말릴 수 있고 비용 문제도 크니, 그냥 무시하고 통과하라"는 지시였습니다. 선장으로서 회사의 명령은 절대적이었고, 이를 어길 시에는 해고는 물론 사법 처리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살려달라"는 눈빛을 외면하지 않은 선택

전 선장은 고민 끝에 선원들을 모았습니다. "저 사람들을 두고 가면 모두 죽는다. 우리가 살리자"고 설득했습니다. 그는 회사에 "기계 고장으로 속도가 느려진다"는 등의 핑계를 대며 비밀리에 구조 작업을 강행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96명의 생명을 구한 위대한 결단의 시작이었습니다.

광명 87호에서의 10일간의 사투

구조된 96명의 피난민들은 이미 한계 상황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좁은 어선에 수십 명의 인원이 추가되면서 식량과 식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졌습니다.

식량과 자원의 공유

전제용 선장은 자신과 선원들의 배급량을 절반으로 줄여 피난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창고에 있던 비상식량은 물론, 잡은 고기들까지 모두 동원되었습니다. 선원들은 자신의 침상을 내어주고 갑판 위에서 잠을 청하며 피난민들을 보살폈습니다.

질병과 위생 관리

오랜 표류로 인해 영양실조와 피부병, 탈수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전 선장은 직접 상처를 소독하고 응급 처치를 진두지휘했습니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생기지 않도록 모든 선원이 합심하여 간호에 매진했습니다.

선원들과의 연대 의식

처음에는 회사의 지시 위반을 두려워하던 선원들도 전 선장의 진심 어린 태도에 감동하여 적극적으로 돕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명령 하달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공감이 만들어낸 기적이었습니다.

귀국 후 맞이한 가혹한 현실과 고난

96명의 생명을 구하고 부산항에 도착했지만, 전제용 선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훈장이 아닌 '징계'와 '조사'였습니다.

해고와 관계 당국의 조사

당시 정부와 회사는 전 선장의 행동을 '돌발 행동'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는 회사에서 즉각 해고되었고, 정보 기관으로부터 피난민 중에 간첩이 섞여 있을 가능성 등을 이유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서 문제를 만드느냐"는 비난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생계의 위협과 멍게 양식업

해기사 면허마저 취소될 위기에 처했던 그는 더 이상 배를 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그는 고향인 통영으로 내려가 멍게 양식업을 시작했습니다. 화려한 선장에서 어촌의 양식업자로 삶이 바뀌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잊힌 영웅으로 보낸 세월

그렇게 전 선장의 이야기는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듯했습니다. 그는 묵묵히 자신의 삶을 일구며 살았고, 자신이 구한 사람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긴 세월을 보냈습니다.

잊히지 않은 은혜, 피난민들과의 기적 같은 재회

세월이 흘러 2004년, 전제용 선장이 구했던 보트피플 중 한 명인 피터 누엔(Peter Nguyen) 씨가 간절히 그를 찾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반전을 맞이합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피난민들의 수색

구조된 96명 중 상당수는 미국과 유럽 등지로 정착하여 의사, 변호사, 사업가 등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구해준 'Captain Jeon'을 한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수소문 끝에 통영에서 양식업을 하던 전 선장의 소재가 파악되었습니다.

19년 만의 눈물의 재회

2004년, 미국 LA 공항에서 전제용 선장과 그가 구했던 생존자들이 재회했습니다. 나이가 지긋해진 선장과 번듯한 사회인이 된 피난민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통곡했습니다. 생존자들은 전 선장을 향해 "당신은 우리의 아버지"라며 극진한 감사를 표했습니다.

전 세계에 알려진 인류애

이 재회 장면은 주요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타전되었습니다. 그제야 대한민국 사회도 그가 행한 일의 가치를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난민의 수호자'로 불리며 전 세계적인 존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전제용 선장의 업적과 사회적 가치

전제용 선장의 행동은 단순한 구조 활동을 넘어 법과 규정보다 상위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시사합니다.

국제 해사 기구와 인도주의

그의 사례는 국제 해사 기구(IMO) 등에서 선장의 권한과 인도주의적 구조 의무를 논할 때 자주 인용되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바다 위에서는 국적과 이념을 불문하고 조난자를 구해야 한다'는 해상법의 기본 정신을 가장 완벽하게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나눔과 희생의 교육적 가치

현재 전제용 선장의 이야기는 초등 교과서나 인성 교육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안위보다 타인의 생명을 소중히 여긴 그의 삶은 이기주의가 팽배한 현대 사회에 큰 울림을 줍니다.

구분 주요 내용
구조 일시 1985년 11월 14일
구조 장소 남중국해 (말레이시아 인근 해상)
구조 인원 베트남 보트피플 96명
당시 선박 광명 87호 (현대양행 소속)
사건의 결과 선장 해직 및 조사, 19년 후 재회
주요 수상 Nansen Refugee Award (노미네이트), 각종 시민상

우리가 전제용 선장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전제용 선장은 특별한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직업 윤리에 충실했고,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양심을 지켰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리더십의 표본

리더는 위기 상황에서 결단력을 보여야 합니다. 전 선장은 상부의 부당한 지시에 굴복하지 않고, 무엇이 옳은 길인지를 판단하는 도덕적 리더십을 보여주었습니다.

대한민국 외교적 위상 제고

그의 헌신적인 행동 덕분에 대한민국은 국제 사회에서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품격 있는 국가로 인식될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과의 관계에서도 민간 차원의 훌륭한 교두보 역할을 했습니다.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

그는 인터뷰에서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배가 없으면 다시 사면 되지만, 사람은 죽으면 끝이다." 이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진리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제용 선장의 이야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빛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그는 고난의 세월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날로 돌아가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담담히 말합니다. 그의 고귀한 희생과 용기가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