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상비문이란 무엇인가?
‘호상비문(虎像碑文)’은 고려대학교 캠퍼스의 상징물인 호랑이 동상(호상, 虎像)의 받침석 뒷면에 새겨진 글로, 고려대학교의 정신과 민족적 기개를 담아낸 헌시(獻詩)이자 찬시(讚詩)입니다. 이 비문은 1965년, 학생들과 교우들이 성금을 모아 호상 동상을 제작하고 제막할 때 함께 공개되었습니다. 글을 쓴 이는 청록파 시인으로 유명한 조지훈(趙芝薰, 1920~1968)으로, 당시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였습니다.
호상비문은 단순한 학교 기념비문을 넘어, 민족의 힘과 꿈, 젊은이의 야망, 자유와 정의, 진리와 지조, 그리고 조국의 영원한 고동을 상징적으로 노래하는 작품입니다. 이 글은 오늘날까지도 고려대학교의 응원가 ‘민족의 아리아’의 원작시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2. 호상과 호상비문이 세워진 배경
1960년대 초, 고려대학교는 학교를 상징하는 동물로 호랑이를 내세우며, 그 기개와 용맹, 민족정신을 형상화한 동상을 캠퍼스에 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1963년 학생들과 경영대학원생들이 ‘호상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순수하게 학생들과 동문들의 모금으로 240여만 원을 모아 1965년 2월 호상(虎像) 제막식을 거행합니다.
호상은 지구 위에 호랑이가 앉아 있는 형상으로, 세계를 호령하라는 의미와 함께 젊은 고대생들의 기백을 상징합니다. 하단 받침석 뒷면에 조지훈 시인이 쓴 ‘호상비문’이 새겨지며, 이 비문은 학교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 잡게 됩니다.
3. 조지훈 시인과 호상비문
조지훈 시인은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청록파 시인으로, 전통적 운율과 선(禪)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결합한 시 세계를 펼쳤습니다. 그는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교가와 호상비문, 4·18기념비 비문 등 학교의 주요 상징물을 위한 글을 남겼습니다.
호상비문은 조지훈 시인의 민족적 자각과 젊은이의 기상, 그리고 교육의 이상을 집약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비문에는 ‘고려대’라는 학교 이름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그 정신과 기백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모든 고대인과 우리 민족에게 울림을 줍니다.
4. 호상비문 전문과 해설
호상비문(虎像碑文) 전문
민족(民族)의 힘으로 민족(民族)의 꿈을 가꾸어 온
민족(民族)의 보람찬 대학(大學)이 있어
너 항상(恒常) 여기에 자유(自由)의 불을 밝히고
정의(正義)의 길을 달리고 진리(眞理)의 샘을 지키느니
지축(地軸)을 박차고 포효(咆哮)하거라
너 불타는 야망(野望) 젊은 의욕(意慾)의 상징(象徵)아
우주(宇宙)를 향한 너의 부르짖음이
민족(民族)의 소리되어 메아리치는 곳에
너의 기개(氣槪) 너의 지조(志操) 너의 예지(叡智)는
조국(祖國)의 영원(永遠)한 고동(鼓動)이 되리라
해설
이 비문은 민족의 힘과 꿈, 대학의 자긍심, 자유·정의·진리의 가치, 젊은이의 야망과 의욕, 그리고 조국의 영원한 심장박동을 상징적으로 노래합니다.
- 민족의 힘과 꿈: 호상비문은 ‘민족의 힘으로 민족의 꿈을 가꾸어 온’이라는 구절로 시작해, 학교가 단지 지식 전달의 공간이 아니라 민족의 이상을 실현하는 터전임을 강조합니다.
- 자유·정의·진리: 대학의 3대 이념을 ‘자유의 불’, ‘정의의 길’, ‘진리의 샘’으로 표현하며, 호랑이(호상)가 이 가치를 지키는 수호자임을 상징합니다.
- 젊은이의 야망과 기상: ‘불타는 야망, 젊은 의욕의 상징아’라는 구절은 청춘의 열정과 도전정신을 극적으로 드러냅니다.
- 우주를 향한 부르짖음: 한 개인, 한 학교를 넘어 우주와 민족, 조국을 향한 외침이 되어 메아리친다는 시적 상상력이 돋보입니다.
- 기개·지조·예지: 마지막 연에서는 젊은이의 기개와 지조, 예지가 조국의 영원한 고동이 될 것임을 노래하며, 민족과 조국에 대한 헌신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5. 호상비문이 가진 상징성과 전통
호상비문은 고대인의 기개와 의지를 대표하는 글로, 졸업을 앞둔 선배들에게 후배들이 직접 탁본을 떠 선물하는 전통이 이어져 왔습니다.
고려대 사학과 등에서는 이 탁본을 졸업 기념품으로 삼기도 하며, 비문을 통해 학교의 정신을 되새깁니다.
또한, 호상비문은 2003년 ‘민족의 아리아’라는 이름의 곡으로 만들어져 고려대학교 응원가로 사용되며,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 자긍심과 연대감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6. 호상비문이 주는 메시지와 현대적 의미
호상비문은 단순한 학교의 상징을 넘어, 오늘날에도 젊은 세대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줍니다.
- 자유·정의·진리의 수호: 대학의 본질적 가치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합니다.
- 민족적 자각과 기상: 세계화 시대에도 민족적 뿌리와 정체성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 청춘의 열정과 도전정신: ‘지축을 박차고 포효하거라’는 구절처럼, 두려움 없이 세상에 도전하라는 격려로 읽힙니다.
- 지조와 예지: 흔들림 없는 신념과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이처럼 호상비문은 고려대학교를 넘어 우리 모두가 새겨야 할 삶의 자세와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7. 마치며
호상비문은 한 대학의 상징을 넘어, 민족의 기개와 젊은이의 이상, 그리고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시적으로 승화시킨 명문입니다.
조지훈 시인의 깊은 통찰과 시대정신이 담긴 이 글은, 오늘날에도 자유·정의·진리의 수호자이자, 민족의 소리로 메아리치는 젊은이의 기상을 상징합니다.
고려대학교 캠퍼스를 찾는 이라면, 호상과 그 뒷면의 호상비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그 울림을 가슴 깊이 새겨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 호상비문 전문 및 해설
- 조지훈 시인과 고려대학교의 역사
- 호상비문과 응원가 ‘민족의 아리아’의 관계
민족의 힘으로 민족의 꿈을 가꾸어 온
민족의 보람찬 대학이 있어
너 항상 여기에 자유의 불을 밝히고
정의의 길을 달리고 진리의 샘을 지키나니
지축을 박차고 포효하거라
너 불타는 야망 젊은 의욕의 상징아
우주를 향한 너의 부르짖음이
민족의 소리되어 메아리치는 곳에
너의 기개 너의 지조 너의 예지는
조국의 영원한 고동이 되리라.
— 조지훈, 호상비문